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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개그콘서트의 남성인권보장위원회라는 꼭지를 보며 웃을 일이 종종 생긴다. 남자와 여자, 그 상대적 아이러니의 틈을 파고 든 참신한 발상을 보며 킥킥대는 웃음을 남기게 된다.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를 지나면서부터 자리잡은 남녀 불평등의 역사가 뿌리 깊고 명백하다. 평등하지 않다는 말 속엔 여성이 젠더로서 차별을 받는다는 속뜻이 빼곡히 들어있다. 이 와중에서의 남성 역차별에 관한 이야기들은 그저 한 번 웃어 제끼고 넘어 갈 정도로 가볍진 않다. 대부분 연애 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유치한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의외로 많은 남자들이 무릎을 치며 후련해 한다. 그만큼 많은 남자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공감의 몰표이고, 불편했지만 적당히 참아주거나 받아 주었다는 말이다. 상식적인 것은 명료하다. 남자와 여자의 생명과 인권은 무얼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동등하다는 것이다. 남보원은 전통적 약자인 여성 위주의 호불호가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인식에 기반한 남성적 시각의 소심한 앙갚음이기도 하다. 다만 이 시절의 논리로 좌파라 대변되는 강기갑의 이미지와 더불어 빨간 머리띠, 북소리에 맞춘 시위구호로 상징되는 운동권이 줄줄이사탕처럼 패러디되어 별것도 아닌 것들을 해달라며 징징대는 모습으로 희화화되고 있는 모습은 조금 씁쓸하다. 이것이 까칠한 비주류를 조롱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대중의 열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좌파에 대한 비판의식인지는 아리송하지만 역시 너무 깊게 들어가는 건 오버페이스다. 권력자도 소위 까이는 코미디에서 그게 뭐 대수라고.
Z에게 보낼 동인지를 찾아 볼 심산으로 책장 앞에 선 휴일 아침, 빼곡한 책들 속에서 아주 오래된 공책 한 권을 꺼내든다. 표지도 장식도 없고 줄도 없이 종이로만 엮어 만든 시작노트였다. 순간 아주 오랜만에 내 생의 눈빛이 반짝였다고 생각했다. 10여 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왜 그동안 기억나지도 눈에 띄지도 않았을까. 거의 매일 몇 줄 쓰다 몇 줄 지우고 다시 몇 줄 쓰다 한 장씩 찢어 버리던, 내 찰기 넘치던 글쓰기의 반증 같은 산물. 볕이 궁한 다락방 구석의 문갑처럼 정지된 시간 속을 무심히 지나며 느리고 깊게 빛바래 가던 공책 하나, 처녀애들의 동맥처럼 들끓던 내 중세의 골동품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천천히 한 장씩 읽어본다. 오래된 낡은 공책은 종이를 묶어 놓았던 접착제가 말라버린 탓에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잘게 떨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 변색된 종이도 마음에 들었다.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니었던 것을 응시하는 안타까움, 그 깊고 수척한 회억들을 어쩌면 우리들은 하나 둘씩 지니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낡고 오래된 것에 끌리는 촌스런 취향은 사소한 공책 한 권을 보며 마음이 편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절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과 생각이 원하던 것, 하지만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던, 요즈음의 내 복잡한 심사를 되돌리기 위해 꼭 필요하던 일이 조금 더 확연해졌다. 시심의 회복은 너무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아무튼 그랬다. 오랜만에 보니 비뚤어진 글씨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것을 보며 피식 웃는다. 뒤늦게 찾아 든 동인지를 들고 우체국을 향하는 마음이 그럴듯하다. 근데 정말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ㅋ
노트 펴기
세상을 살다보면 하도 어이가 없어 쓴웃음만 나오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요즈음 떠도는 황구라의 헛소리가 그렇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불편부당한 사회에 문제의식을 가진 진보작가라 여기던 사람, 아무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시절 휴전선을 넘어 시대적 아픔을 몸소 받아들였던 사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쓰며 목숨을 걸었고 소설 '오래된 정원'을 쓴 사람, 지난 대선에선 MB집권을 막기 위해 독재타도를 외치다 총대를 메겠다며 비상시국선언을 한 사람이 황석영이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찌질한 삽질과 구라를 늘어놓는다. 욕먹을 각오가 되어 있다니 가관이다. 그에겐 이제 광주 민주화항쟁이 광주사태가 되었고 용산참사는 실책이긴 하지만 좋은 나라 유럽에서도 있던 일이니 우리도 그런 걸 겪으면서 사회가 나아가는 것이라 한다. 거룩한 큰 틀을 운운한다. MB야말로 중도실용주의자라고 떠벌이며 좌우를 가리는 게 우습다는 논리를 펴면서 지금으로선 한나라당이 전국정당의 기틀을 마련한 진보란다. 천천히 나팔수를 넘어 완장 하나 차려는 냄새가 난다. 그가 온갖 자리에서 빛나는 구라로 좌중을 유쾌하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빨로 고작 젊은 애들이 철이 없어서 군대가 다시 총칼을 들이밀 빌미를 제공한다는 썰을 풀어야 할까. 무엇보다 황구라의 말 속엔 온당한 근거가 없다. 단지 그의 표현대로 '핀란드 여자애'의 한 마디와 MB의 '나는 중도랍니다'라고 해준 말씀, 우아떠는 알타이문화운동과 새로 간을 본 권력에 대한 욕심 뿐이다. 겨우 내세운 것이 나잇살이다. 우리는 이제 최소한의 상식마저 그리워해야 하는 시대에 산다. 별별일이 있어도 그러려니 하며 꾹 참고 산다. 허나 일말의 개연성도 수치심도 없는 논리로 자기 생의 내력에 똥점을 찍는 황구라의 위선과 헛소리를 보며 측은하기까지 하다. 소화불량이 도진다. 그저 말없이 두툼한 홍두깨로 주둥아리를 냅다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 일지만 굳이 손쓰기도 아깝다. 그럴 만한 가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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