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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을 생각하다 세시풍속들을 제치고 달려드는 음식 생각에 그만 입안 가득 침이 고입니다. 그리운 음식에 대한 기억만큼 사람에게 허기를 느끼게 하면서도 포만하게 만드는 것은 드물지 싶습니다. 투박한 교자상에 가득 차려졌던 맛깔스런 밥과 찬들을 생각하면 요즘의 덩치 크고 눈부신 식탁은 도리어 빛과 향을 잃고 마는 듯 합니다. 유년의 어느 추운 겨울 날, 발을 동동 구르며 달려 들어온 집안엔 여느 때와 다른 고소한 냄새들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갑자기 배가 고픕니다. 찰진 오곡밥이 뜸이 들기를 기다려 주발에 가득 담아 내놓으시던 어머니의 젖은 손과 뜨거운 김을 따라 모락거리며 피어오르던 향긋한 밥냄새를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 가지고 사는 허기의 밑둥 어딘가가 그 때 가졌던 맛에 관한 기억에 맞닿아 있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발도 뜨겁고 마음도 덩달아 뜨거워지던, 대보름이나 되어야 맛볼 수 있었던 오곡밥과 나물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금새 허기가 지니 말입니다.어머니는 대보름 식탁을 위해 일년 내내 나물들을 말리셨습니다. 작은 박을 타서 속을 파내고는 껍질을 잘게 썰어 좋은 날에 내놓습니다. 무도 잘게 썰어 내놓습니다. 시래기도 처마 끝에서 오래도록 말라가고 애호박도 은근하게 말라갑니다. 가지와 고구마순, 도라지도 그렇고 뒷산에서 따온 버섯과 고사리와 취나물도 천천히 어머니의 손길을 따라 녹녹해집니다. 그러나 바짝 마르고 말라 고사한 것 같은 나물들은 대보름이 되자 새생명을 얻습니다. 물에 헹구고 삶고 기름을 두른 그것들은 다시 기다리는 사람을 조급하게 만드는 향을 뿜어댑니다. 취나물을 보면서는 저걸 밥에 비벼 먹을까 그냥 먹을까 작은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며 방안에서 부엌으로 방정맞은 발걸음을 왕복하는 동안 호박고지는 상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절반이나 작은 입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상이 차려집니다. 할머니께서 수저를 드시기 전부터 안달을 하다가 마침내 오곡밥을 한입 가득 떠넣고는 너무 뜨거워 금새 입을 호호 거려야 했는데 이때 한겨울의 호사처럼 떠먹던 시원한 동치미국물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가벼운 얼음이 살짝 떠다니던 시원하고 새콤한 동치미국물이 입안의 뜨거운 밥과 섞이며 가져다 주던 즐거움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요. 동치미국물은 야참으로도 그만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화로에 구운 고구마와도 좋았고 삶은 국수를 넣어 말아먹던 기억 또한 잊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오곡밥과 함께 먹던 갖가지 나물들은 또 얼마나 고소하고 야무진 맛이 났는지, 남은 나물들을 나중에 뜨거운 밥과 함께 질그릇에 툭툭 털어넣고 고추장에 비비면 또 얼마나 더운 맛이 났는지, 생각만 해도 이마에 땀이 맺힙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아직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가난했던 어머니의 대보름 상차림이 내 품으로 와락 안겨드니, 추억이 때로는 온기일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살가워 자꾸 먹먹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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